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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철학이야기(Philosophy Stories)/현대철학(Contemporary Philosophy)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시몬 드 보봐르

by Sean Papa's Philosophy Stories 2026. 4. 18.

우리는 흔히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여성은 원래 이렇고, 남성은 원래 저렇다고 쉽게 말하곤 하지요.

누군가는 다정함을 여성다움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강인함을 남성다움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믿어온 이 구분은 정말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결과일까요?

 

이 질문을 가장 강렬하고도 날카롭게 던진 철학자가 바로 시몬 드 보봐르입니다.

작가이자 철학자인 그녀는 현대 여성철학과 실존주의 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특히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문장은 짧지만 파괴력이 엄청납니다.

왜냐하면 이 한마디가 ‘여성다움’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던 사회적 규범과 권력 구조를 통째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보봐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 문장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어떤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 삶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단순히 여성 문제를 넘어,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규정되고 길들여지는가까지 함께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시몬 드 보봐아르는 누구인가

시몬 드 보봐르는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작가, 사상가입니다.

장폴 사르트르와 함께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되지만, 단지 누군가의 동료나 연인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독자적인 사상 세계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녀는 철학, 문학, 정치, 여성 문제를 가로지르며 인간의 자유와 조건, 억압과 해방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시몬 드 보봐르
시몬 드 보봐르

 

 

 

보봐르가 우리들에게 특히 큰 영향을 남긴 책은 바로 제2의 성입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여성이 역사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타자’로 규정되어 왔는지를 분석합니다.

남성이 보편적 인간의 기준처럼 자리 잡는 동안, 여성은 늘 그 기준에 비해 설명되는 존재, 즉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존재로 취급되어 왔다는 것이지요.

여성은 본질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문제는 몸이 아니라, 그 몸에 사회가 덧씌운 의미다.

 

이 말은 오늘 들어도 여전히 묵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를 한 사람의 개별적 존재로 보기보다, 성별에 따라 기대하고 판단하는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의 뜻

 

이 문장을 오해 없이 이해하려면 먼저 보봐르가 무엇을 부정하고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녀는 생물학적 차이가 전혀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곧바로 특정한 성격, 역할, 운명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생각을 비판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여성이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성다움’은 대부분 사회가 오랜 시간 주입하고 훈련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얌전해야 한다, 예뻐야 한다, 돌봐야 한다, 양보해야 한다, 너무 강하면 안 된다, 너무 드러나면 안 된다는 식의 규범 말입니다. 이런 기준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기대이며, 사람들은 자라면서 그 기대를 몸에 익히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이 다르고, 칭찬받는 방식이 다르고, 허용되는 감정 표현이 다르고, 직업 선택에 대한 기대가 다르면 결국 인간은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보봐르는 바로 이 지점을 본 것입니다.

여성이 태어나자마자 특정한 본질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 속에서 반복적으로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보봐르가 비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성을 ‘타자’로 만드는 사회

 

보봐르 철학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는 타자입니다.

그녀는 역사적으로 남성이 인간의 기본값처럼 여겨져 왔다고 보았습니다.

남성은 그냥 ‘인간’인데, 여성은 언제나 ‘여성 인간’으로 불립니다.

남성의 경험은 보편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여성의 경험은 특수한 것으로 취급되는 구조인 것이지요.

 

이 구조 속에서 여성은 스스로를 기준으로 살아가기보다,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놓은 시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남들이 보기에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자유로운 존재이기보다 평가받는 존재로 길들여집니다. 보봐르는 이 점을 매우 날카롭게 파헤쳤습니다.

본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규범

사람들은 종종 말합니다.

여성은 원래 섬세하고, 모성적이고, 감정적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보봐르는 이런 표현이 너무 쉽게 ‘본성’이라는 말로 포장된다고 보았습니다.

사실은 오랫동안 그런 역할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본래의 성질처럼 여기곤 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계속해서 돌봄 노동을 맡고, 자신의 욕망보다 타인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순응적일 때 칭찬받는 환경에 놓인다면, 그 사람은 점점 그런 태도를 자기 성격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 사회는 다시 그것을 보고 “봐라, 원래 여자는 그런 존재다”라고 말합니다.

보봐르는 바로 이 악순환을 깨뜨리고 싶어 했습니다.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어려운 조건

 

실존주의는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봅니다.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행동하면서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보봐르는 현실에서 여성에게는 이 자유가 늘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법과 제도, 문화와 관습, 경제적 의존 구조가 여성을 특정한 자리에 묶어두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자유롭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다면, 그 자유는 반쪽짜리입니다.

보봐르는 여성이 인간으로서 자기 삶의 주체가 되려면, 단지 마음가짐만 바꿔서는 안 되고 사회 구조 역시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점에서 그녀의 철학은 개인의 각성과 사회 비판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이유

 

많은 것이 달라진 시대라고 하지만, 보봐르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어떤 말투를 써야 하는지, 어느 정도 강해야 하고 어느 정도 부드러워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는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가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믿는 것조차,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랜 사회적 압력과 시선 속에서 형성된 것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선택지가 생겼지만, 동시에 더 교묘한 방식의 규범도 함께 생겼습니다.

완벽한 외모, 완벽한 일과 가정의 균형, 지나치게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상 같은 것들이 새로운 기준이 되기도 하지요. 겉으로는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또 다른 형태의 압박일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보봐르의 문장은 과거의 선언이 아니라 오늘의 질문으로 다시 읽힙니다.

 

이 철학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여성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역할을 부여받고, 어떻게 그 역할을 자기 정체성으로 내면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보봐르의 문제제기는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가 개인을 만드는 방식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에서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익숙한 기준을 의심해보기

 

보봐르의 철학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질문입니다.

 

  • 내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여성다움, 남성다움은 정말 자연스러운 것인가?
  • 나는 내 선택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랜 기대를 수행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처음엔 꽤 불편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생각을 깨우는 시작점이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여자는 원래 그렇잖아” 혹은 “남자가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넘기지 않고 정말 그런지 묻는 태도 말입니다.

 

사회는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을 분류하고 역할을 나누지만, 철학은 그 자연스러움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개인을 본질로 가두지 않기

 

보봐르의 사상은 누군가를 성별이라는 틀만으로 다 설명하려는 태도를 경계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언제나 구체적인 한 사람이지, 어떤 집단의 본질만으로 환원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섬세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대담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돌보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혼자만의 성취를 더 중요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성별 때문에 자동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보면 보봐르의 철학은 해방의 언어입니다.

사람에게 “너는 원래 이런 존재야”라고 미리 결론 내리지 말고,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직접 만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두라는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선언만으로 오지 않는다

 

보봐르를 읽다 보면 자유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자유를 단지 마음속 의지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경제적, 문화적, 제도적 장벽을 그대로 두는 사회라면 그 자유는 공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자유는 개인의 결단과 함께 사회적 조건의 변화까지 요구합니다.

 

이 대목은 지금 읽어도 참 현실적입니다.

누군가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 꿈을 실제로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봐르는 바로 이 현실 감각을 가진 철학자였습니다.

 

결론

 

시몬 드 보봐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짧지만,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자연스럽다고 믿어온 많은 것들을 뒤흔듭니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에 대한 한 문장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규정되고 길들여지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입니다. 몸의 차이가 곧 운명이 아니며, 사회가 만든 역할이 곧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문장이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수많은 방식으로 사람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별, 외모, 나이, 역할, 성공의 기준까지. 우리는 자유롭게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종종 익숙한 틀 안에서 자신을 설명하고 타인을 판단합니다. 보봐르는 그 틀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틀 밖으로 한 걸음 나가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문장이 참 정직하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그냥 주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와 문화와 제도 속에서 계속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묻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봐르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결국 누구나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